3세대까지만 해도 씹덕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미남은 아닌데 인기가 많은 애들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었다고 보면 좋을 듯하다. 그 시절에는 보통 씹덕상인 애들이 실력멤인 경우가 많았다. '아이돌이란 솔로하기엔 부족한 n명이 모여서 완벽한 하나를 만드는 것.'이 제작자 사이에서도 통용되는 공식인 시절이었다. 못생겨도 실력이 있으면 그걸로 그룹의 한 부분을 채우고, 잘생겨도 실력이 없으면 잘생긴 걸로 그룹의 한 부분을 채우면 됐었다. 그렇게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있는 것이 아이돌 그룹이었고 개중에 인기 1등은 보통 실력멤이 가져가곤 했다. 다시 말하지만 객관적으로 잘생기진 않은 그런 애들이.

 

    1996년 에쵸티의 데뷔 이래 시작된 아이돌 1세대부터 대략 3세대까지 외모보다 실력을 추구하는 현상은 계속된다. 그 시절에는 씹덕상과 더불어 향기없는 꽃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보통 잘생긴 애들이 실력이 없고 끼가 없으니 그런 애들을 일컬어 그리 불렀다. 이 무렵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는 못생긴 실력멤을 좋아하는 팬들이 어떤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실력으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짜'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얼굴만 보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가리없는 '얼빠'로 매도당하고, 실력멤팬들이 비주얼멤팬들에게 어떤 우월감을 가지고 있던 시절. 그 시절엔 실력이 최상의 가치였기에 아이돌 보컬 실력을 가지고 논문 배틀을 벌이는 일도 흔했다. 팬들이 원하는 게 실력이니 실력있는 보컬들이 계속 등장했다. 그들은 필수적인 존재였다. 메보를 구하지 못해 데뷔가 늦어진 그룹, 막차를 타고 데뷔한 메보 같은 썰이 제법 흔했다.

 

    이런 헤게모니가 어느 시점부터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언제일까? 아이돌 팬덤도 사회 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 아닐까 싶은데, 바로 메갈라이징 이후다. 메갈라이징 이후 못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착즙'이라고 매도당하게 된다. 여자도 이제는 남자 외모를 볼 때가 됐다. 못생긴 남자들 미디어에 노출되게 하지 좀 마라. 능력있고 돈 많다고 늙고 배 나온 남자 만나면 그게 페미니즘이냐? 여자도 잘생긴 남자를 좋아해서 남자들을 코르셋 조이게 해야한다. 이런 주장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외모보다 실력을 추구하는 것을 고상한 가치처럼 여겨왔던 기존 아이돌돌 팬덤에게 이 헤게모니의 전복은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었으나 트위터라는 SNS와 메갈라이징과 거의 맞물려 시작한 프로듀스101 시즌2로 (어리고)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 (늙고) 못생긴 남자를 착즙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라는 개념이 돌판 전체에 겉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된다. 이때부터 못생겼거나 나이 많은 남돌을 놀리는 건 하나의 스포츠처럼 자리하게 됐다. 이 흐름에 가장 재수없게 걸렸던 것이 아마 윤지성이 아니었을까 싶은.../애도 아무튼 저 헤게모니를 페미니즘이라는 가불기에 엮어버리니 이제 잘생긴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지 잘생긴 아이돌을 좋아한 것 뿐인데 남들보다 내가 더 페미 잘한다는 우월감까지 갖게 되어버렸고 그것이 이 변화를 더 가속화시키게 됐다.

 

    이러한 변화 속에 아이돌 인기멤도 비주얼멤이 먹는 경우가 상당수 보이고 있다. 3세대까지 이어졌던 인기멤 공식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 세상이 변한 걸 알았지만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해 라이즈 인기멤을 예측하면서 소희가 그래도 중상은 하고 은석이 당연히 꼴찌를 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보기 좋게 틀렸다. (소희는 몰라도 은석 꼴찌는 나 외에도 예측한 늙은 팬들이 꽤 많았다. 다 같이 틀렸다^^) 은석이 생각외로 팬서비스도 잘하고 웃겼던 것도 있지만 꽤나 선방하고 있고, 앤톤이 인기 많은 것도 15년 전으로 돌아가 한창 덕질하고 있는 팬에게 '라이즈라는 그룹이 있는데 얘가 인기 2등이다.' 하고 보여준다면 아마 매우 놀라워 할 일일 것이다. 그 시절이었다면 앤톤은 그저 막내가 포지션인 에셈 전통의 막내 라인을 잇는 존재였을텐데 말이다. 한편 과거의 그룹을 보면서 지금 데뷔했다면 쟤 말고 쟤가 인기 1등이었을 텐데 싶은 그룹도 있다. 동방신기가 지금 데뷔했으면 영웅재중-믹키유천이 1-2등이었을 거 같지 않니ㅋㅋ

 

    3세대에서 4세대로 넘어갈 때는 기존처럼 어마어마한 팬덤을 가진 남돌이 쨘-하고 등장해서 새 시대를 연 것이 아니었어서 세대가 바뀐 것을 부정하는 팬들도 많았다. 나도 그 중 하나였는데 4세대도 열렸다고 한지 5년이 다 되어가서 돌이켜보니 세대가 바뀌긴 했다. 정확히는 팬덤이 아이돌을 대하는 태도에서 세대ㅡ세상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외모가 최우선 가치가 되는 날도 오는구나. 예전만큼 잘생긴 애들이 무끼에 무실력이 아니기도 하고, 못생긴 애들이 어마어마한 실력자도 아니고, 뭔가 니맛도내맛도 아닌 멤버 구성도 영향은 있겠지만, 아무래도 페미니즘의 영향이 큼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대한민국 사회의 루키즘이 강화된 것 뿐이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는데 어쨌거나 잘생긴 남돌을 좋아하면 페미니스트 기분이라도 낼 수 있는 것이 2023년 현재 아이돌판의 현실인 것이다.